당갈, 전 세계 흥행 인도영화의 '화려한 뒤집기'/ 실화 관련 이야기 및 스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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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5. 6. 23:10
인도는 잘알려진 영화 강국이죠. 자국영화가 박스오피스를 점령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국가기도 하구요. 인피니티워 광풍이 부는 와중에 예매율 2위인 영화는 특이하게도 인도 영화 당갈입니다. 해외에서 흥행뿐만 아니라 비평에서도 높은 고지를 점령한 당갈이 궁금해 극장을 찾았습니다.
소감부터 말씀드리자면, 반지의 제왕도 아닌 3시간 가까운 영화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상영시간이 115분만 넘어가도 긴 영화다, 괜히 질질 끄는 영화다 평가하는데 161분 동안 지루하지 않게 극을 이끌어가는 대단한 내공을 확인했습니다.
자식을 국제대회 메달리스트로 만들려는 아버지와 자식의 갈등, 노력, 성공의 뻔한 이야기지만, 배우들 특히 아역들의 훌륭한 연기와 경쾌한 리듬의 편집, 음악과 인도 특유의 원색적인 색감의 조화가 한국영화 아니면 할리우드 영화에만 익숙했던 저의 멘탈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당갈의 뜻은 인도현지의 레슬링 대회를 뜻합니다. 이 뜻을 알고 다시 당갈 OST를 들으니 느낌이 묘해지네요. 당갈 OST 중 후렴에 당갈, 당갈을 반복하는 가사가 있는데, 한국으로 따지자면 유도 영화 OST의 후렴구에 유도, 유도... 라는 부분이 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DangGal OST 주제곡 가사
주인공 마하비르는 인도 레슬링 전국챔피언이지만, 끝내 국제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평범한 아저씨가 되어버린 마하비르. 마하비르는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르 칸이 연기했습니다. 아미르 칸은 인권에 관심이 많은 배우로 인도인의 인권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페미니즘적인 성향의 당갈도 이런 아미르 칸의 관심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신의 뒤를 이어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선수로 키우기 위해 아들을 원한 마하비르. 하지만 4명의 아이가 모두 딸인 딸부자집 아저씨가 되고 맙니다.
이번에도 딸을 낳아 미안해 하는 아내.
아쉬움을 삼키는 마하비르. 영화 내내 아미르 칸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흐를 것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 마하비르지만 훌륭하게 감정을 전달해내고 있습니다.
감독은 항상 눈썹 사이에 주름을 잔뜩 진 마하비르의 감정선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중 하나가 음악입니다. 영화를 보신다면 마하비르의 감정 변화에 맞춰 흐르는 음악에 집중해보시기 바랍니다. 표정변화가 많지 않은 캐릭터의 감정을 연기 외 방법으로 잡아내는 감독의 실력에 감탄하시게 될겁니다.
딸 뿐인 자식들을 보며 마음을 정리하는 마하비르.
국제대회의 꿈은 레슬링 트로피, 메달과 함께 상자안에 집어넣습니다.
포기하고 지내던 어느날, 동네 사람들이 집에 찾아옵니다. 마하비르 아저씨의 두 딸 기타와 바비타에게 남자아이들이 얻어맞았다는 소식과 함께.
마하비르는 눈이 번쩍 뜨입니다. 그래.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이냐. 금메달은 금메달이지.
----- 스포방지선 -----
여기부터는 영화의 반전아닌 반전을 포함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뭐, 당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 결과를 뻔히알고 보는 영화지만 그래도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다른 영화 포스팅을 이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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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에게 레슬링 교육을 시키고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기로 마음먹은 마하비르. 당갈은 페미니즘 영화의 성격을 띄고 있지만, 그것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지는 않습니다.
마하비르는 여성은 레슬링을 할 수 없다는 사회 통념에, 아내의 반대와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을 딛고 정면 도전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여성도 레슬링을 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온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자식에게 메달을 따게하고 싶은데, 자식은 딸뿐. 그런데 이 딸들이 레슬링에 재능이 있네? 같은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시작합니다.
영화도 그런 부분을 아는지, 어린 나이에 신부가 된 아이들 친구의 입을 빌려, 정해진 레일 위를 따라야하는 인도여성의 현실을 비판하고, 가능성을 실현시켜주려는 마하비르를 옹호합니다.
이런 페미니즘적인 사상이 기저에 깔리지만, 그것은 약간의 양념일 뿐입니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는 등장인물의 성별을 바꿔도 극진행에 전혀 지장이 없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당갈을 보며 여성 레슬러의 이야기는 소재의 독특함을 위한 장치고 실상은 성별을 초월한 스포츠 성장담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담백함이 당갈을 더 페미니즘적인 영화로 바꿔놓습니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에피소드들이 나옴으로써, 반대로 남자, 여자 이런 구분은 스포츠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역설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 제 머릿속에는 중요한 것은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지 성별은 어떤 장애도 되지 않는다는 영화의 메시지만 남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아이들의 머리를 남자아이처럼 짧게 자르는 씬도 결국 그런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이 등장인물들은 남성, 여성 이런 구분을 떠나 한명의 레슬러, 한명의 스포츠인이라고.
어쨋든 동내 레슬링 대회는 물론 주 레슬링 대회에서 남자 선수들을 꺽으며 인기 레슬러로 성장하는 마하비르의 딸 기타.
환호하는 장면에서도 표정은 변하지 않는 마하비르 아저씨. 평소 표정에서 입만 벌렸네요.
그리고 첫째 딸 기타는 레슬링 주니어 전국 챔피언이 되는데... 이때 반전 아닌 반전이라면 여성 레슬러가 많았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인도에 여성 레슬러는 단 한명도 없는 것 처럼 해놓고선 전국대회로 가니 쓩쓩 나타나는 여성 레슬러들.
인도는 세계에서 2번째로 인구가 많은 넓고 넓은 나라니 시골 동네에서는 여성 레슬러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뭔가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뭐 그렇다고 기분나쁘거나 한 건 아닙니다.)
국가대표가 되어 합숙 훈련을 받기 위해 한국으로 따지면 태릉선수촌에 들어간 기타.
훌쩍 커버린 동생 바비타의 응원을 받으며 영연방 게임(영국 연방 70여개 대표팀 참가 국제대회) 여성 레슬링 55kg급 금메달을 따내게 됩니다.
당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지만, 각색이 엄청 많이 되었다고 하네요. 일단 영화에서는 레슬링 시합 장면이 매우 극적으로 그려지고 기타는 매번 대회 1라운드에서 떨어지는 선수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2010년 영연방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해인 2009년 영연방 레슬링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열정과 딸의 노력이 영화에서보다는 쉽게 결실을 맺었네요. 영화 당갈의 결말부 하이라이트인 2010년 델리 영연방게임 결승에서도 영화와 같은 극적인 경기가 아닌 한점도 내주지 않는 압도적인 기량 차이로 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하네요.
(기타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 창고에 마하비르가 갇히는 것도 극적인 연출일 뿐이라고...)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 기타와 바비타의 사촌오빠 옴카르가 실존인물인가였는데 아직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당갈이 만약 페미니즘 영화라고 한다면, 여성 레슬러라는 설정보다는 이 헌신적인 사촌오빠의 존재가 그 증거지 않을까 합니다. 사촌 여동생들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는 사촌오빠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스트로 보입니다.
딱딱해지기 쉬운 스포츠영화에 감초같은 역할을 해주는데, 아역, 성인역 배우 둘다 연기를 찰지게 잘합니다. 그 사촌오빠를 그대로 데려왔나 싶을 정도죠. 엄하고 항상 심각한 표정의 아미르 칸을 대신 마하비르와 딸들 사이의 윤활유 역할까지 톡톡히 해서, 당갈이 3시간에 가까운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놓치지 않게 해줍니다.
아미르칸은 동안으로 유명한 배우인데(인도의 키아누리브스 같은...) 초반 20대의 레슬러를 연기하는 저 모습이 CG가 아니라고 합니다.(대역은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까 저 울퉁불퉁한 몸에서 이렇게 뽈록한 모습으로 살을 찌웠다는 거죠. 영화를 위해 체중을 고무줄처럼 조정했던 크리스찬 베일도 한 영화내에서 급격한 체중변화를 보여주지는 않았는데, 아미르 칸의 열정은 마하비르가 가졌던 레슬링에 대한 열정에 뒤지지 않는것 같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인도영화지만, 3시간 가까운 영화는 지루하다는 편견과 인도영화에 대한 어색함을 한방에 뒤집은 영화. 대단한 영화, 당갈이었습니다.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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