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곳에 가면 먼저 라멘집을 찾습니다. 한국에서는 좋은 라멘집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가는 동네에서 끝까지 먹을만한 라멘가게를 만나는 것은 행운보다 희박한 기적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일이 있어 오랫만에 인천을 찾았습니다. 인천에서 석남동이라는 곳은 처음가보네요. 인천은 어렸을때 잠깐 살았었는데, 그때가 너무 어리고 잠깐이라 많이 모릅니다. 생소한 석남동에서 라멘가게를 찾다가 우연히 근처 골목에 라멘파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은 가게인지는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 라멘가게죠. 고민없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좋은 라멘을 먹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렇게 찾은 인천 석남동의 라멘집, 도쿄라멘입니다.
제가 도쿄라멘을 찾았을 때는 덮밥과 사이드, 주류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곧 이전하실 계획이라고 하시네요. 저는 라멘만 먹어도 충분하기 때문에 슬프지 않았지만 혹시 덮밥이나 주류도 함께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꼭 참고해 주세요.
참고로, 도쿄라멘은 이곳 석남동 말고도 전국에 몇 곳이 더 있습니다. 일본라멘집이니까 일본의 수도인 도쿄로 이름지은 라멘집이 몇곳 더 있어도 이상하지 않죠.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여쭤보니 석남동의 도쿄라멘은 프렌차이즈가 아니라고 하시네요. 석남동 고유의 개인 가게이니 프렌차이즈를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도 안심하고 찾아주세요.
라멘 종류가 많습니다만, 모두 돈코츠 + 닭 육수 기반에 간을 맞추는 재료만 다른 정도입니다. 저는 기본이 되는 돈코츠라멘을 주문했습니다.
가게는 작습니다. 대략 4인석 5테이블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라멘 가게는 작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이 모습을 보며 안심했습니다.
오픈주방에서 맛있는 라멘을 만들어주시는 쉐프님.
장소 이전을 한다는 게시물이 붙어있습니다. 인천 서구 석남2동 근처니 참고해주세요.
기다리던 돈코츠 라멘이 나왔습니다.
알맞게 익은 반숙 계란. 노른자의 익음이 적당합니다. 간장에 오래 담가두지 않은 듯 겉부분에만 살짝 간이 베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노른자까지 짭쪼름하게 간을 베이는 반숙 계란을 좋아하지만 도쿄라멘의 반숙 계란도 깊은 내공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숙주가 한가득 올려져 있습니다. 다른 블로그 후기에서는 숙주에서 쓴맛이 조금 났다고 하셨는데 제가 먹을 때는 그런 부분은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아삭아삭한 숙주가 국물과 잘 어울려 라멘을 더 풍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차슈는 작은 삼겹살같은 것이 두 덩이 들어있습니다. 고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아쉬울 수 있는 차슈양이지만, 맛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맛간장에 설탕을 넣고 푹 졸여 동파육 비슷한 맛과 식감을 냅니다. 간이 강하기 때문에 차슈 추가해도 많이 먹지는 못할 것 같내요. 그래서 두 조각 나오는 기본 서빙이 적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라멘을 먹다보니 더 먹고 싶어졌지만.
도쿄라멘의 국물은 돈코츠와 닭으로 육수를 낸 혼합육수를 사용합니다. 도쿄라멘이라고 하니 닭육수가 메인일꺼라고 생각했는데, 돈코츠가 메인이고 거기에 닭육수로 벨런스를 잡은 느낌이네요. 돈코츠, 돼지뼈에서 엑기스를 한계까지 뽑아낸 후 비릴 수 있는 부분이나 부족한 끝맛 등을 커버하기 위해 닭육수를 잘 섞었습니다. 그래서 첫맛은 돈코츠느낌이지만 끝맛은 닭육수 특유의 담백함이 묻어납니다.
한국에서는 믹스된 육수를 사용하는 라멘집이 많지 않은데, 이곳은 육수를 섞은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컨트롤 했습니다. 국물을 한 스푼 떠먹어보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전 준비중이라 그런지 나오는 찬은 평범했습니다. 단무지나 생강절임 없이 딱 요 김치만 나옵니다. 하지만 라멘이 맛있으니 찬에는 큰 불만이 없었습니다.
면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특색없는 면이라 도쿄라멘만의 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얇은 면이 적당한 수준으로 익혀져 나쁘지 않았지만, 면이 주는 임팩트는 기억나는 것이 없어 조금 아쉽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천 석남동의 도쿄라멘은 인천에 간다면 일부러 찾아갈 가치가 있는 라멘집이라 하겠습니다. 돈코츠를 파워풀하게 우려내면서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투입한 닭육수가 자기 역할을 확실히 해 고소한 첫맛과 담백한 끝맛의 이율배반적인 국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육수가 테너처럼 라멘의 전체 벨런스를 묵직하게 눌러준다면, 차슈는 알토처럼 고음을 쳐올립니다. 동파육처럼 달콤하고 짭쪼름하게 졸여낸 차슈가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육수의 잔잔함에 감칠맛을 던져 멀리멀리 퍼지는 파문을 만들어 냅니다. 둘의 조화가 훌륭해 좋은 라멘 한그릇이 완성되었습니다. 평범한 면은 조금 아쉬웠지만, 육수와 차슈의 콤비네이션이 뛰어나 좋은 라멘이라 평하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집에서 먼 인천에 있어 자주 찾기 어려운 도쿄라멘. 언제 또 찾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 맛을 이어가주시길 바랍니다. 늦기전에 또 찾겠습니다. 잘먹었습니다.
강남 논현 '대표 라멘집' 멘야산다이메 / 도쿄돈코츠의 진한 육수가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