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운테스 | 그녀는 정말 '피의 백작부인'이었을까?


오래 간만에 서양 시대극 영화 리뷰로 찾아뵙습니다. 오늘 작품은 백작부인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카운테스입니다. 그녀는 '피의 백작부인'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인데요. 

영어식 이름은 엘리자베스 바토리지만, 헝가리식으로 하면 바토리 에르제베트라고 하네요. 흥미롭게도 한국처럼 성이 먼저 이름이 나중 순입니다. 


영화 카운테스 리뷰


영화 카운테스의 배경


영화 더 카운테스의 배경인 16세기 동유럽은 오스만 투르크(오늘날의 터키)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특히 바토리 가문의 주요 근거지인 트란실바니아(오늘날의 루마니아)와 인근 헝가리는 오스만 군대의 침략에 자주노출됐다고 합니다. 

바토리 백작부인의 남편인 헝가리의 나다스디 페렌츠 백작도 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카운테스의 백작부인 남편, 나다스디 페렌츠 백작


영화에서 엘리자베스 바토리 역할은 프랑스 출신의 여배우 줄리 델피가 맡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 그리고 비포 미드나잇의 주연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비포 시리즈에서 금발이었다면 카운테스에서의 줄리 델피는 흑발의 모습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얼핏 김태희와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운테스 상영 때 줄리 델피의 나이가 우리나라 나이로 41세인데요. 극중 바토리 백작부인의 나이도 그쯤입니다. 그녀는 이미 아이들도 여럿 있는 과부입니다. 


영화 카운테스의 백작부인 아이들


영화에서는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피의 백작 부인'이 된 계기가 어린 연인 때문이라고 그려집니다. 그녀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알게되었는데 대상이 21살의 젊고 잘생긴 청년(다니엘 브륄) 입니다. 

그의 이름은 이스트반 투르조로, 하필 바토리 에르제베트 백작부인과 대립관계에 있는 기요르기 투르조 백작의 아들입니다. 


영화 카운테스의 줄리 델피


영화 카운테스의 기요르기 투르조 백작


가문으로 따지면 투르조바토리에 이름을 내밀기 어렵습니다. 당시 귀족식으로 따지자면 '고귀한 피'라기보다는 결혼으로 백작 작위를 획득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바토리 가문은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공작이자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왕 바토리 이슈트반을 비롯해 수 많은 왕족과 대귀족들로 연결된 가문입니다. 동유럽 지역에서는 합스부르크 가문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명문가입니다. 


16세기 바토리 가문과 귀족들


바토리 백작부인과 애인


영화 카운테스의 이스트반 투르조



사랑은 신분의 장벽을 뛰어넘게 해주지요. 영화 카운테스에서 평소 다른 귀족들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무심하고 서늘한 느낌의 바토리 백작부인은 어린 연인에게 푹 빠집니다. 

파티에서 처음 만난 후 불같이 사랑하다가 억지로 갈라서기 전까지 전형적인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이지요. 밤새 연인 이스트반 투르조의 편지를 기다리고 연락이 없으면 초조해합니다. 


영화 카운테스 백작부인의 거울



근세 트란실베니아 바토리가문의 백작부인


그리고 이스트반이 아버지 기요르기 투르조 백작에게 감금당해 연락을 하지 못하자 결국 평정을 잃고 반 미친상태가 됩니다. 



후에 바토리 백작부인이 연인 이스트반이 예쁘고 어린 여자와 결혼했고 현재는 자신의 부인을 가장 사랑하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습니다. 기다리던 내용의 편지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사실 그 편지는 이스트반이 아닌 그의 아버지 기요르기 투르조 백작이 보낸 것이지만 바토리 백작부인은 알지 못합니다. 



실연의 슬픔에 빠진 백작부인. 이스트반이 자신을 떠난 이유가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분보다 20살 가까이의 나이차이를 가장 큰 장벽으로 여긴 것이지요. 



바토리 백작부인은 우울해하고 폭력적이 됩니다. 머리를 빗겨주던 하녀를 폭행하고 그 와중 그녀 자신의 얼굴에 피가 튈 정도였지요. 그리고 이 사건이 그녀의 광기 어린 행동의 시작이 됩니다. 

거울을 보며 피가 튀었던 곳을 닦아내자 피부가 평소보다 젊고 매끈해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착시현상이었지요. 


영화 카운테스의 피의 백작부인


처음에는 하녀에게서 조금씩 얻어내던 피가 나중에는 아이언 메이든(철의 처녀)라는 중세시대 고문 도구까지 이용할 정도가 됩니다. 아이언 메이든은 중세 유럽에서 마녀사냥 등에서 활용되던 고문 도구중 하나입니다. 철가시가 박혀있는 철통 안에 사람을 집어 넣고 뚜껑을 닫는 잔인한 고문 도구이지요.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부인은 처녀들이 흘린 피로 얼굴과 손을 씻는 잔인한 기행을 벌입니다. 


바토리 백작부인의 아이언 메이든


연쇄살인 초기에는 마을 신부에게서 장례를 치뤄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체가 많아지자 성 주변에 버렸다고 하네요. 전해지는 설에 따르면 살해된 처녀들의 숫자가 6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녀의 범행 대상이 하층민 계급의 소녀에서 귀족 처녀들로 확대되자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중세 신부와 장례식


16세기 동유럽 귀족 영애와 부인 의상


영화에서는 이스트반 투르조가 아버지 기요르기 투르조 백작(크게는 그 위 헝가리 왕)의 명령으로 한 때 연인이었던 바토리 백작부인의 성을 찾아 잠입 조사를 펼칩니다. 


백작의 아들이자 백작부인의 애인


그는 재회한 바토리 백작부인과의 관계에서 잠시 갈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녀보다는 아버지 부하의 재촉을 따릅니다. 이스트반과 동행한 아버지의 부하는 성안의 방문을 하나 열어보더니 놀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는 그 안에 소녀들의 시체가 썩아가고 있다고 말하며 이스트반에게는 보지 못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바토리 백작부인은 재판에 넘겨집니다. 재판관은 조사관과 일부 증인들의 발언 그리고 바토리 백작부인의 일기를 증거로 채택해 백작부인에게는 금고형, 그녀의 하녀와 하인들은 사형을 선고합니다. 

금고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작은 독방에 죽을 때까지 가두는 형인데요. 작은 구멍으로 먹을 것만 배급해 줍니다. 이때문에 죄수는 서서히 죽어가게 됩니다. 


역사 기록에서 바토리 백작부인의 사망나이는 54세(1614년)입니다. 영화에서는 44세의 나이에 구금 돼 이후 독방에서 자살을 택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요. 


그녀는 독백을 남깁니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로 전쟁터에서 수천의 병사들을 죽이고 싶다라고요. 


영화 카운테스의 바토리 백작부인 결말






영화 카운테스는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영화 도입부에서 바토리 백작부인의 어린 시절이 너무 설명처럼 쭉 나열되었고 잔인할 수도 있는 사건들이 일상적인 것이듯 담담한 색채로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토리 백작부인을 사랑하는 '마녀' 다르뷜리아(안나마리아 마링카)와의 동성애 관계, 백작부인의 파멸을 부추기는 도미닉 비자크나 백작의 숨겨진 M성향 등도 어떻게 보면 자극적일 수 있는 부분인데요. 영화에서 짧게 지나가고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카운테스의 다르뷜리아


카운테스의 도미닉 비자크나 백작


다만 영화를 보고 나면 바토리 백작부인이 과연 역사에 기록된 것과 같은 희대의 악녀가 맞는가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일단 그녀가 죽고나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헝가리 왕인 마티아스가 그녀(정확하게는 남편)에게 지고 있던 부채를 탕감 받았고, 바토리 백작부인이 가진 엄청난 부를 투르조 백작이 관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과부였던 귀족 여인의 부가 타인의 것이나 다름 없게 된것이지요. 


헝가리왕 마티아스


16세기면 중세를 지나 근세로 가는 시점이지만 여전히 마녀 몰이가 남아있었고 귀족이어도 남자보다 여자의 지위가 허약한 때였습니다. 게다가 종교 갈등 시기에 바토리 가문은 신교를 선택했다고 하니 아직도 세력이 굳건한 구교 세력과 갈등 관계에 있었습니다. 


바토리 백작부인의 일기


이에 더해 바토리 백작부인이 600명이 넘는 희생양에 대해 기록했다는 백작부인의 일기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처녀의 피로 목욕하기 위해 6백 여명 넘게 죽인 연쇄살인마, 온갖 고문도구를 이용 했다는 등의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며 부풀려 졌을 거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영화 카운테스에서도 이러한 의견을 따랐는지 그녀가 처녀들의 피를 탐하는 장면은 보여주면서도 피로 목욕하는 장면, 시체가 쌓여 있다는 방 등은 그리지 않습니다. 투르조 백작을 비롯한 일부의 주장일 뿐입니다. 영화 결론에서처럼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니 진실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피의 백작부인이라 불리는 것도 진위를 알 수 없는 기록을 바탕으로 후대에 만들어진 이미지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 한국사에서 비슷한 방식의 사례로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겠네요.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가 허구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죠.)


바토리 백작부인 실화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영화 독백처럼 그녀가 남자 장군으로 태어나는 것도 좋지만, 오늘날 의느님을 영접할 수 있었다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의문도 듭니다. 영화 속 그녀의 미에 대한 집착이 현대 의학의 힘으로 좀 더 정상적인(?) 방법으로 표출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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