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 마고 줄거리 순서로 보는 인상적인 영화 장면 4 | 결말 스포 주의
- 리뷰 이야기 Reviews/영화 Movies
- 2018. 6. 11. 23:22
1994년 개봉작 영화 여왕 마고는 지금 봐도 세련된 작품입니다. 25년이나 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파트리스 세로 감독이 수년간 공들여 기획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럴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촛불 이외 인공 빛이 잘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색감이나 원색의 의상들은 오히려 16세기 당시 프랑스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더해줬습니다.
영화 시작부분에서 나오듯 여왕 마고는 종교전쟁이 10년 넘게 이어지던 1572년 프랑스 배경의 시대극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종교분쟁의 한 가운데 있던 나라였습니다. 구교인 가톨릭과 신교인 위그노의 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이죠.
그 와중 프랑스 구교를 대표하는 세력 발루아 왕가의 공주 마고와
개신교의 대표 인물 나바르(나바르는 오늘날 스페인과 프랑스에 걸쳐 있는 바스크 지역)의 앙리가 결혼식을 하기로 합니다.
이것은 겉으로는 종교 갈등의 분쟁을 봉합하는 듯 보였으나 더 큰 갈등의 전초였습니다.
줄거리 순서를 따라 영화 여왕 마고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4개를 뽑아보았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고 결말 스포가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1. 결혼식과 피로연
마고와 앙리의 결혼식에는 왕족들은 물론 고위 성직자들과 귀족들이 대규모로 참여했습니다. 하객 규모도 수천명으로 엄청나고 예식 장면 자체도 웅장합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로마 가톨릭 스타일이네요. 종교 갈등의 상황에서 영화 배경의 십자가 예수상이 의미심장합니다.
주례를 맡은 주교가 마고에게 묻습니다. '발루아 왕가 마르그리트는 나바르 부르봉가 앙리를 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까'라고.
참고로 마고(실제 프랑스식 발음은 마르고)는 애칭이라고 합니다.
마고는 주교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지도 않습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프랑스왕이자 마고의 오빠인 샤를 9세가 마고의 뻣뻣한 고개를 억지로 누릅니다. 이 영화 장면에서 마고가 남편이 될 앙리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고와 앙리의 피로연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왕족과 귀족들이 한데 모여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흥겹게 춤도 추고 대화도 나눕니다.
귀족들의 의상이 화려한데요. 이렇게 화려한 의상을 입은 것은 귀족 중에서도 구교들입니다. 신교들은 주로 검은색 계열의 단정한 옷들을 입고 있습니다.
제가 현재까지 본 시대극 영화 중에서 의상이 가장 예쁜 영화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 다음 여왕 마고입니다. 영국 왕실과 귀족들을 배경으로 한 천일의 스캔들과 골든에이지에서의 엘리자베스 1세 의상도 예뻤지요.
하지만 영국 시대극과 프랑스 시대극 의상을 굳이 비교하자면 프랑스 시대극 의상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2. 첫 만남
결혼식날 전까지만해도 마고의 애인이었던 기즈 공작은 마고를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기즈 공작가, 정확히는 현 기즈 공작의 아버지 프랑수아 드 기즈는 프랑스 최고의 권력가였습니다. 그는 마고의 아버지 앙리 2세 왕와 인척 관계입니다. 또한 그의 조카 딸이 엘리자베스 1세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입니다. 중세와 근세 유럽의 왕가, 고위 귀족가문은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마고의 아버지 앙리 2세 왕이 사망 후 마고의 큰 오빠 프랑수아 2세(현 왕인 샤를 9세는 마고의 둘째 오빠)가 왕이되었는 데요. 이 당시 전 기드 공작은 프랑수아 2세와 메리 스튜어트의 약혼도 주선한 바 있습니다.
마고는 기즈 공작의 냉담한 태도에 다른 하룻밤을 보내줄 남자를 찾아 가면을 쓰고 파리의 밤거리로 나섭니다.
결혼식을 올린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시점인데요.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16세기 프랑스 왕족들이 중세시대보다 자유분방했다는 점과 여왕 마고는 엄연히 19세 관람가 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날 거리에서 훗날 연인이 될 라 몰르와 처음으로 만나고 뜨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나중에 알게되지만 라 몰르는 마고와 달리 신교도였습니다.
3. 대학살의 밤
시간이 흘러 1주일 가까이 이어지던 결혼 피로연이 끝나갑니다. 왕궁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갑니다. 마고는 이상 기류를 느끼고 정략결혼이긴 하지만 남편인 나바르의 앙리를 찾아 경고해 줍니다. 최대한 빨리 왕궁을 떠나는 게 좋겠다고.
이 쯤 마고의 엄마 카트린느 왕비와 마고의 전 애인 기즈 공작이 물밑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카트린느 왕비는 아들 샤를 9세를 대신해 섭정을 하고 있었는데요. 샤를 9세는 성인임에도 심성이 나약한 편이라 어머니에게 휘둘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왕궁의 실세는 왕인 샤를 9세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 카트린느 였던 것이죠. 카트린느는 이탈리아 반도 대귀족이던 메디치 가문 로렌초 2세의 딸입니다.
왕위 계승 확률이 높지 않던 프랑스 왕자와 결혼했는데 나중에 그가 프랑스 왕 앙리2세에 즉위하게 됩니다.(카트린느는 남편이었던 앙리 2세가 죽자 사랑했던 님이 죽었다면서 평생 검은색 상복을 입었다고 하네요. 영화에서도 까뜨린느는 내내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카트린느는 자신을 따르던 아들이 콜리니 제독이라는 신교도 귀족을 신임하고 아버지 처럼 따르기 시작하자 제독의 암살을 시도합니다.
그 암살 자체는 실패. 하지만 카트린느는 샤를9세에게 암살 시도에 분노한 신교도들이 복수를 위해 왕궁을 습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왕궁이 공격받기 전에 먼저 신교도들을 처리해야한다고 부추깁니다.
어머니 카트린느의 주장에 대한 샤를9세의 선택은 위 이미지에서 보는 것과 같습니다. 프랑스 왕의 이름으로 성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사건이 일어납니다. 마고의 결혼식 하객으로 참여했던 사람 중 신교도 수천명이 구교도에 의해 학살당합니다.
마고의 남편 앙리도 위험했으나 마고가 어머니와 오빠들을 설득해 구해줍니다. 결국 앙리는 구교도로 개종하고 살아 남습니다.
이 학살의 밤 마고는 두 사람을 구했는데요. 하나는 정략 결혼한 남편 앙리이고 다른 하나는 연인이 될 라 몰르입니다. 파리의 거리에서 하룻밤 만났던 라 몰르가 큰 부상을 입고 왕궁 한 켠으로 숨어 들어옵니다. 마고는 그를 알아보고 구교들의 잔인한 손속에서 구해주고 치료도 해줍니다.
4. 우는 눈과 웃는 입
마고의 남편 앙리가 개종했지만 샤를 9세의 모후 카트린느는 암살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녀 수하의 이탈리아 귀족 시녀에게 앙리를 유혹하도록 했고 붉은 립스틱도 선물합니다. 이 립스틱에는 독이 묻어 있었는데요. 키스하면 죽음에 이를 치사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암살은 실패합니다.
잠시 립스틱에 대해 말하자면 립스틱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화장품들은 이집트와 같은 고대에도 있었지만 그 후 유럽에서 현대와 비슷한 화장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라고 합니다.
그 와중 샤를9세가 사냥을 나갔다가 동생 앙리(마고의 남편 나바르의 앙리와 이름이 같습니다)에게 암살당할 뻔한 사건도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마고는 성인이 된 오빠가 3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첫째 오빠가 사망하고 왕이 된 것이 그녀의 둘 째 오빠 샤를9세입니다. 그 샤를 9세를 셋째 오빠 앙리가 암살하려 했던 것이죠.
동생에게 사고를 가장, 암살당할 뻔한 샤를9세였지만 나바르의 앙리가 구해줍니다. 이는 샤를 왕이 나바르의 앙리를 신뢰하는 계기가 됩니다.
나바르의 앙리를 눈에 가시로 여기는 카트린느는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암살을 시도합니다. 막내 아들이자 마고의 동생 프랑수아를 시켜 독이 발라진 사냥책을 앙리의 책상 위에 둡니다. 책장이 잘 넘겨지지 않아 필연적으로 침을 묻혀 넘길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뜻하지 않은 비극적 결과를 불러오게 되죠.
암살 목표였던 앙리 대신 그의 방에 들렸던 샤를 9세가 그 책을 읽어버린 것입니다. 심약한 성정과 달리 그는 아버지 앙리 2세 등 발루아 왕가의 다른 남자들처럼 사냥을 좋아하였습니다. 샤를 9세는 침을 묻혀가며 열심히 사냥책을 읽었고 결과적으로 독에 중독됩니다. 내장이 녹아가며 천천히 죽어가도록 만드는 무서운 독이었습니다.
왕이 죽기 전 마고를 침실로 부릅니다. (영화에서는 마고와 오빠들이 근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암시합니다. 이 설에 대해 일부 역사학자들은 신교인 위그노들이 자신들을 학살했던 발루아 왕가를 폄하하기 위해 실제와 다른 소문을 퍼트렸다고 말합니다. 영화에서도 신교도 하객 일부가 마고에 대해 창*라고 뒷담화 하는 등 그녀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들이 퍼져 있습니다.)
마고에게 이런 저런 말을 하던 샤를 9세는 마고의 하얀 드레스를 피로 물들인 채 죽습니다.
결과적으로 마고의 셋째 오빠 앙리3세가 새로운 프랑스 왕이 됩니다.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불렀습니다. 샤를9세를 죽도록 만든 사냥책에 쓰여있던 이름이 마고의 애인 라 몰르였던 것이죠. 라 몰르가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사냥책을 책방에 팔았는데 그것이 암살도구로 쓰이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샤를 9세가 죽고 라 몰르는 왕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교수형을 당합니다. 마고가 라 몰르를 살리기 위해 움직였지만 소용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왕위 교체기 어수선한 틈을 타 마고는 프랑스 왕궁을 빠져나옵니다. 나바르로 탈출한 앙리가 그녀를 구출하고자 불렀기 때문입니다.
평소 마고의 시중을 들고 지원해주었던 여공작 앙리에트 드 느베르 Henriette de Nevers 와도 안녕을 고합니다.
마고의 품 안. 라 몰르의 머리가 든 보따리를 안은 채였습니다. 마차 안에서 나바르의 앙리가 보낸 시종이 말합니다. '피가 드레스에 떨어집니다'라고.
이에 마고는 대답합니다. '상관 없어. 미소 지을 수만 있으면 돼'라고요.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됩니다. 눈에는 슬픔이 가득하고 입꼬리는 미약하게 위로 올라가 있습니다.
그녀의 미묘한 표졍과 함께 음악이 흐르고 영화가 끝납니다.
여왕 마고의 결말은 애잔합니다. 일련의 사건과 죽음 뒤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마고의 운명이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영화 장면들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의 아름다운 외모도 한몫했습니다.
이자벨 아자니는 1995년 프랑스의 주요 영화상인 세자르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세자르상 남우조연상(샤를 9세 역의 장위그 앙글라드), 여우조연상(카트린느 메디치 역의 비르나 리시)도 여왕 마고팀이 수상했습니다.
이 밖에 영화 여왕 마고는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여자배우상(카트린느 역의 비르나 리시)을 수상했습니다.
여왕 마고는 19세기 프랑스 소설가인 알렉 상드르 뒤마의 소설 '왕비 마르고'를 원작으로 합니다. 알렉 상드르 뒤마는 유명한 프랑스 고전인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철가면 등의 작가죠. 뒤마의 소설들은 재미있는 만큼 허구적 상상의 내용이 많이 섞여 있으니 마고가 실화 바탕 소설이라해도 작가의 성향을 감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마고는 나바르의 앙리와 이혼하고 평안한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도, 나바르의 앙리도 엄청난 바람둥이였다고 하네요.
애인의 시신 일부를 품에 안고 슬픔을 참는 영화 속 마고와는 다를 듯 합니다.
영화 속 이후의 시점이지만 나바르의 앙리의 경우 마고의 세번째 오빠 앙리 3세가 암살된 후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신교에서 다시 가톨릭으로 개종합니다. (나바르의 앙리를 지원해왔던 영국 엘리자베스 1세와 네덜란드에서 당황했을 정도라고 하네요.)
하지만 앙리4세는 1598년 낭트칙령을 발표해 개신교인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해줍니다. 유럽에서 종교개혁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도장찍어 준 것이나 다름 없죠.
신교도에는 특히 상인 계층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칼뱅주의 개신교(오늘날 장로교, 침례교)가 자본주의 발생의 모태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여왕 마고 덕분에 유럽 종교전쟁 혹은 종교개혁 시대의 역사를 다시 한번 살펴봤네요. 시대극과 역사는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요.
다음에는 16세기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영화 카운테스(백작부인) 포스팅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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