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에서 평양냉면이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죠. 그 모습을 보고 냉면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 제 머릿속에 떠오른 맛있는 냉면은 신기하게도 수년전 청량리에서 먹었던 할머니냉면. 매운 냉면인데 육수의 깊은 맛이 일품이라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냉면은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안에 있습니다.
서울 3대 냉면이라는 말은 누가 붙인 것인지 모르지만,
할머니 냉면은 제가 꼽는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냉면 중 하나입니다.
찾아가실 때 지도를 많이 확대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축소된 지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로 들어가야 할머니 냉면이 나옵니다.
수년 만에 찾았는데도 변하지 않은 할머니냉면의 가게 모습.
늦은 시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냉면을 먹고 있습니다.
청량리 할머니냉면의 메뉴는 간단합니다. 가격은 냉면 오천원, 곱배기는 육천원, 면사리는 이천원입니다. 양이 많아서 특별히 배가 고픈 상황이 아니라면 일반으로 드셔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할머니냉면의 하이라이트, 육수입니다. 이 육수가 할머니 냉면의 알파요 오메가죠. 뜨거운 육수는 셀프, 차가운 육수는 병에 담아주는데, 이 뜨거운 육수도 꼭 드셔보시기 바랍니다. 제 입에는 뜨거운 육수가 더 맞았습니다.
뜨거운 육수는 냉면 먹는 중간중간 마실 수 있도록 미리 가져다 놓으면 좋습니다.
이건 차가운 육수입니다. 얼음이 동동떠있는 차가운 육수는 컵에 따라 마시다가, 반쯤 남은 냉면에 부어 물냉처럼 먹으면 딱입니다.
할머니 냉면 곱배기가 등장했습니다. 위의 양념장은 정말 맵습니다. 주의! 할머니 냉면 자체가 매운 냉면이기 때문에, 절대 다 비비지 말고 양념장은 반정도 덜어내고 비비면서 맛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먹는 순간 매운 그런 맛이 아니라, 먹다보면 올라오는 매운 맛이라 방심은 금물입니다.
오이가 풍성합니다. 오이 안드시는 분이라면 냉면이 매우 홀쭉해지겠네요.
무도 냉면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가위로 한번 자르고.
잘 비벼줍니다.
냉면 계란이니 당연히 완숙이죠.
할머니 냉면을 처음 먹으면 일반 냉면과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양념을 많이 넣으셨다면 맵다는 감각만 남으실 수도 있구요. 면이 매우 독특하거나 세련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할머니 냉면이 맛있고 오래 기억에 남은 이유는 소고기 사태살로 제대로 우려낸 육수에 있죠. 냉면을 한입 했을 때는 모르는데, 늦게 올라오는 매운 맛 처럼, 감칠맛도 한박자 늦게 얼라옵니다. 그냥 냉면인데? 이런 생각으로 젓가락을 움직이다 보면 가슴 깊은곳에서부터 감칠맛이 조금씩조금씩 쌓이기 시작하죠.
야속하게도 차곡차곡 쌓인 감칠맛이 폭발하는 시점은 냉면을 거의 다 먹을 때쯤입니다. 초반은 평범하지만 반전이 엄청난 영화를 본 것처럼 냉면의 마지막 면발을 후르륵 할때쯤이면, 왜 할머니 냉면이 맛있는 냉면인지 알게 됩니다.(그리고 왜 매운 냉면인지도 뼈저리가 느끼게 되죠.)
오랫만에 먹은 할머니 냉면은 여전히 감칠맛이 넘치고 맵고 시원했습니다. 청량리가 집에서 멀다고 생각했는데, 멀다고 하면 안되겠습니다. 이제 곧 여름인데, 한강변 산책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헤맨척 하면서 찾아야겠습니다. 잘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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