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기생충 리뷰/ 디테일에도 크기가 있다면 '사소취대'/ 스포 포함


개인적인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봉준호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 중 플란다스의 개와 괴물을 제외한 모든 극장 개봉작을 극장에서 찾아보았지만, 그래도 봉준호 감독의 작품은 제 취향과는 어긋나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리뷰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렸을때,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봉준호 감독같이 디테일에 충실한 타입은 본인의 문화권을 벗어나면 평가가 반감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영화 기생충 감상


기생충을 보고 난 후,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이 변했다고 해야할까, 이전 작품들과 약간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선 디테일을 버리고 메시지를 취해야 할 때는 과감히 디테일을 버렸다는 것.


봉준호 감독 디테일


봉준호 감독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디테일이죠. 스치듯 지나가는 작은 것들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작은 소품 하나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었기에,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기생충 최우식


기생충은 생각보다 허술한 영화였습니다. 보는내내, 이게 정말 봉준호 감독의 작품인가? 싶은 장면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죠. 이전 작품들에서는 보기 어려웠을 그냥 영화니까 퉁 치고 넘어가는 설정들이 여기저기서 마구 쏟아졌습니다.



가장 뜬금없었던 설정은 백수 가족의 능력들이 하나같이 비상했다는 것. 재수생에 불과한 아들이 엄청난 영어 교습 실력자에 딸은 사문서 위조를 척척해내고, 한번 해본적 없을 것 같은 미술 치료의 달인이 됩니다. 



학력속인거야 그렇다쳐도, 사모님을 속은것도 그렇다쳐도, 천방지축 날뛰는 부잣집 아들을 길들인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초능력이죠. 그 아들은 수많은 미술 교육 전문가들이 포기한 전력이 있는데도.


기생충 송강호


아빠로 나오는 송강호의 운전실력도 의문입니다. 발렛하면서 몇 번 몰아본 것이 전부인 벤츠를, 영업점에서 구조를 몇 번 익히고 나서 까다로운 이선균 대표님이 감탄하는 코너링을 도는 모습을 보면,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위해 고집을 꺾었구나 싶었습니다.



능력은 넘치지만 백수인 가족들. 이런 뭔가 비현실적인 설정을 설명없이 영화에 집어넣어, 보는 내내 영화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치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쥐 때문에 사건이 어이없이 해결되어 버린 장면을 보고 혼이 빠졌던 기억이 살아나더군요. 은근히 개연성에 집착하는 제 성향상, 이런 부분은 참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불편했을뿐, 그것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기생충의 스토리 자체는 미니 시리즈 드라마가 적합해 보이는 긴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두시간으로 압축해야 했으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 했죠. 


봉준호 감독은 이전의 자신을 깨버리는 것 처럼 디테일에 대한 집착, 개연성에 대한 신념을 버린듯해 보입니다. 덕분에 영화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지언정, 지루하지 않게 흘러갈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송강호 가족이 캠핑으로 빈 대표집에 모여 작은 축제를 벌일때도, 말도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마신 양주들이 설령 장식일 뿐이라도 그정도로 양이 줄어들면 모를리가 없는데, 그걸 과감히 실행하는 것부터 이상했습니다.



가장 이상했던 것은 송강호가 술병을 깨버린 후 갑자기 집에 들어닥친 대표 가족 누구도, 술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하실이나 지하철의 미묘한 냄새는 쪽집게처럼 잡아내는 가족들이, 도수높은 술들이 바닥에 뿌려졌는데 누구하나 눈치채는 사람이 없다니! 


이쯤되면 굳이 송강호 가족이 술을 마시게 할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그냥 오징어 땅콩만 먹으면서 있었어도 되지 않았나. 개연성이 완전 망가지니까요.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송강호 가족에게 술을 먹였고, 이는 영화상의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합니다. 만약 이때 송강호가 술병을 깨는 연출이 없었다면, 영화의 결말은 설명될 수 없었겠죠. 깔끔한 마무리를 위한 봉준호 감독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습니다.


영화 기생충 후기


물론 지하철 냄새 이야기는 조금 무리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일하던 젋은 윤기사나, 가정부는 지하철을 안탔단 말인가? 이선균의 지하철 이야기 이후 제 머릿속을 계속 맴돌던 것은 물음표 뿐이었습니다. 덕분에 영화관에서는 기생충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후에 넷플릭스나 구글플레이에 뜨면 다시 봐야겠습니다.



영화의 감상을 적겠다고 시작한 리뷰인데, 계속 불만만 늘어놓았습니다만, 앞서 설명한 이런 개연성의 부족은 도리어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지하철 냄새도 그렇고, 나머지 자잘한 오류들도 꼼꼼히 챙기려고 했다면 챙길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작은 부분은 희생하면서 메시지를 살리는 선택을 했죠.



그 노력은 우리가 보는 영화 기생충이 되었습니다. 곡선으로 날아가기는 하지만 멀리 떨어진 과녁 정중앙에 정확히 꽂히는 화살같이, 영화 기생충은 자신이 도달해야 할 곳에 조금 곡선을 그리지만 정확히 도착합니다. 



디테일이 크고 작음이 있을 수 없겠지만, 영화 기생충은 작은 디테일을 희생해 큰 디테일을 챙긴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올해 최고 영화라고 평하기에 손색이 없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기생충 황금종려상


다만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만한 작품인가에 대한 저의 의견은, 혹자의 [ 발전한 한국 영화계에 준 상 ] 이란 평가에 공감한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기생충 박소담


저는 개인적으로 홍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번 시도는 했습니다만, 결국 좋아지지 않더군요. 하지만, 영화 기생충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지금은 홍어를 못먹지만, 나중에 정말정말 홍어를 맛있게 하는 집을 찾으면 그때는 홍어를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생충 조여정


여전히 저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이 입에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생충같은 작품이라면 봉준호 스타일의 영화도 정말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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