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김둘레 순대국 / 국물은 거들뿐, 양파가 다하는 신선한 순대국
- 맛집 이야기 Hot spots/맛집 Restaurants
- 2020. 2. 11. 23:53
둘러보니 괜찮은 순대국집이 많았던 서초역. 오늘 찾은 곳은 서초역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교대의 김들레 순대국입니다. 이제까지 찾았던 순대국들은 국물이 센터에 서서 무대를 지휘했는데, 김둘레 순대국은 패러다임이 다른 맛을 보여줬습니다. 순댁국의 세계는 깊고 진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좋은 순대국집, 교대 김둘레 순대국 입니다.
가게 앞이 참 혼란스러운 교대 김둘레 순대국. 하지만 이런 정돈되지 않은 듯한 분위기가 이집은 맛집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지도에는 김둘레 순대국 교대점이라고 나오는데, 검색해보니 교대점이 본점인 것 같습니다. 김둘레 순대국은 전국에 30개가 넘는 지점을 가진 제법 규모가 큰 프렌차이즈 가게였네요.
1시가 넘어 점심 시간을 살짝 넘지 않았나 싶은데,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진에 잡히지 않은 테이블에도 손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계시네요.
주방 앞에는 셀프바가 있습니다. 저는 주방에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규모있는 체인점의 본점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아담한 가게 내부. 역사는 이곳에서 시작되었다는 흔한 표현을 붙이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메뉴입니다. 순대국 가격은 일반적입니다. 순대국은 순대만 혹은 고기만을 선택할 수 있네요. 저는 둘 다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순대국을 주문했습니다.
주문하면 바로 준비되는 기본찬. 다른 순대국집과 다를바 없어 보이는 기본찬이지만, 사진으로는 알 수 없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깔끔하게 입맛을 돋궈주는 쌈장. 그냥 쌈장은 아니고 여러 비법 양념이 조화된 맛입니다. 일반 쌈장보다 살짝 더 매콤하면서 혀 위에 살살 스며드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새우젓을 간을 맞출때말고 순대나 고기 찍어먹을때만 사용합니다. 교대 김둘레 순대국의 새우젓은 살짝 양념이 되었는데 염도는 낮아진 느낌입니다. 그래서 순대, 고기 찍어먹을 때 딱 좋았습니다.
달콤한 깍두기. 순대국 가게에서는 깍두기를 달콤하게 해서 내주는 경우가 많은 이곳도 깍두기가 아삭아삭하고 시원시원, 달콤달콤합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양파입니다. 양파가 달콤합니다. 정말 달콤합니다. 사실 좋은 양파는 달콤한 맛이 나는데, 교대 김둘레 순대국의 양파가 은은하게 풍겨나오는 달콤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이곳의 양파는 항상 이런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 양파는 저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사진의 양파를 게눈 감추듯 먹어버린 후에 양파만 한번 리필해 먹었습니다. 그만큼 양파는 달콤했고 피자에 함께하는 피클처럼 순대국에 딱 어울렸습니다.
부추도 특이했습니다. 다른 순대국집의 부추는 순대국에 다 넣어먹어도 좋을 정도로 심심하게 무쳐냅니다. 그런데 이곳의 부추는 살짝 간이 있습니다. 참기름의 고소함 위에 매콤함과 간간함을 덧칠해 순대국에 그냥 퐁당해버리면 국물맛이 변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겉절이처럼 조금씩 집어 먹었는데, 이게 또 나름 순대국과 잘어울리네요.
밥은 평범 무난했습니다. 어떤 리뷰에 밥이 살짝 아쉬웠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그 이후에 와서 그런지 저는 아쉬움은 못느꼈습니다.
테이블 밑에 식기가 있다는 표시. 이런 센스 좋아합니다.
테이블 구석에는 다대기와 들깨가루가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들깨가루.
다대기는 안넣었으니 패스하겠습니다.
사진을 열심히 찍는 동안 등장한 기본 순대국. 부추에 간이 제법 되어있다 싶었더니 순대국에 이미 부추가 들어가 있었네요. 접시에 담긴 부추는 따로 먹는 반찬이 맞았나봅니다.
순대국을 두종류가 나눈다면, 저는 건더기 중 고기의 비중을 기준으로 나눌 것 같습니다. 어떤 가게는 고기의 비중이 높고, 어떤 가게는 고기보다는 내장의 비중이 높은데, 교대 김둘레 순대국은 고기의 비중이 높은 가게입니다. 고기의 비중이 높은 가게들은 국물이 담백하고 잡내가 적은 확률이 높죠. 그런데 이곳은 담백하고 잡내가 적은 정도가 아니라 국물 맛이 투명합니다. 저는 분명 국물을 열심히 먹었는데,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마치 국물 모양의 구름을 먹은 듯한 느낌.
국물이 투명한 맛이라고 표현했지만, 순대국의 맛은 절대 투명하지 않습니다. 투명하고 인상이 흐릿한 국물인데, 그래서 더 다른 식재료들과 잘 어울립니다. 일단 순대국안에 들어있는 순대 본연의 맛이 잘 살아 있습니다. 국물안에 오랜시간 푹 들어가 있었지만, 건져서 먹어보면 딱 맛있는 고기 순대 그맛이 납니다.
고기도 마찬가집니다. 고기를 건져먹으면 딱 고기 그 맛이 납니다. 그런데 먹다보면 나도 모르게 은근슬쩍 국물 맛을 의식하게 됩니다. 투명한것 같았던 국물이 양파, 부추, 깍두기, 순대, 고기, 밥과 어우러지면서 이 재료들을 한껏 살려줍니다.
비유하자면 밴드의 베이스 같은 역활을 국물이 해주는 거죠. 다른 순대국집의 국물이 보컬이라면 교대 김둘레 순대국의 국물은 베이스입니다. 저음을 단단히 잡아줘 다른 악기들이 돋보이게 하는 베이스처럼 국물은 투명하지만 은근슬쩍 풍기는 고소함으로 다른 식재료들의 맛을 살려줍니다.
이제 들깨가루를 넣고 본격적으로 먹어볼 차례. 신기하게도 들깨가루를 넣으니 투명한 맛의 국물이 들깨가루 맛까지 살려줍니다. 세상 모든 식재료를 다 살려줄 것 같은 베이스 같은 국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대 김둘레 순대국은 순대국을 좋아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호불호가 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인이 되어야 하는 국물이 강렬한 인상을 날리지 않고 있거든요. 하지만 양파의 단맛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재주를 가진 국물은 담백하고 깔끔한 순대국을 선호하는 분들에게는 분명 좋은 인상을 남길것 같습니다.
저는 샤우팅을 내지르는 보컬 스타일의 국물을 선호하지만, 교대 김둘레 순대국처럼 식재료를 살려주는 베이스 같은 국물도 어쩌면 취향에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새로운 국물의 세계를 알려준 교대 김둘레 순대국, 정말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