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영화 분석/ 구구절절 설명없이 짧은 대사로 배경 정리하는 '영리한 초반부'


근래 가장 재밌게본 한국영화를 꼽는다면, 단연 범죄도시입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한국영화에 내상을 입어, 한국영화 공포증에 걸릴 지경이었는데, 범죄도시 한편이 제 고질병을 고쳐주었습니다. 


범죄도시 영화 분석


범죄도시는 재밌는 영화입니다. 예술적인 영화는 아니죠. 하지만 영화 교과서에 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기도 합니다. 범죄도시는 정말 영리한 영화거든요. 짧게 툭툭 던지는 대사 하나로 영화의 복잡한 상황을 설명해 버립니다. 그것도 코믹하게 재밌게 말이죠.


범죄도시 장르


범죄도시의 배경은 영화 개봉 시점임 2017년으로부터 대략 10년전쯤, 중국인 조폭들이 활개를 치는 가리봉동입니다. 가리봉동에는 3개 폭력조직이 있습니다. 이수파, 독사파, 춘식이파. 이수파와 독사파는 중국계 조폭이고 춘식이파는 한국계네요. 거기에 경찰이 낍니다. 

금천서 강력반에는 마석도(마동석 분)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형사가 있죠. 마석도, 아니 이제부터 그냥 마동석이라고 하겠습니다. 범죄도시의 장르는 마동석이니까요.(마석도와 마동석, 이름도 비슷하죠?) 금천서 마동석 형사는 3개 조폭들과 비즈니스적인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폭력조직을 완전히 없 수는 없으니까 적당히 사고치지 않도록 컨트롤하고 있는거죠.


방금 설명드린 범죄도시의 배경을 영화에서 풀어낸다면 어떻게 할까요? 딱 떠오르는 것은 경찰 브리핑 입니다. 영화 신세계에서는 골드문 그룹의 세력도를 설명하기 위해 이 경찰 브리핑을 사용했죠. 최민식인 열연한 강형철이 자신의 상사에게 골드문 그룹의 상황을 브리핑하는 장면으로 영화의 배경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킵니다. 

신세계 뿐만 아니라 무간도를 비롯해 경찰 나오는 영화는 거의 다 브리핑으로 영화의 배경을 설명하는데요, 범죄 영화의 비장미를 살리기에는 좋지만 딱딱하고 지루하죠. 거기다 이렇게 누군가가 말로 설명해준 배경은 생기가 없습니다. 교과서로 배운 역사처럼 말이죠. 






앞서 저도 글로 범죄도시의 배경을 설명드렸습니다. 딱딱하고 건조하죠? 그런데 범죄도시는 3개 조폭 그룹과 적당히 처신하는 경찰의 엃히고 섫힌 복잡한 배경을 구구절절한 설명없이 에피소드들과 짧은 대사로 관객들에게 이해시켜 버립니다.


범죄도시 영화 시대배경


영화의 첫장면입니다. 전화를 하는 마동석이 서로 칼을 꺼내들고 대치 중인 중국 건달을 여유롭게 제압합니다.



여기서 관객은 중요한 포인트 2가지를 알게 되죠. 첫번째, 영화의 시대설정. 마동석이 사용하는 전화기를 보시면 폴더폰이죠? 스마트폰이 대중화된것이 2010년 전후니까, 영화의 배경이 대략 2010년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범죄도시 마동석 형사


거기에 전화를 하면서 칼부림하는 깡패 두명을 제압하는 마동석의 모습을 통해 그가 엄청난 실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뒤에서 구경만하던 제복 경찰의 모습을 함께 보여줘 마동석의 실력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동시에 마동석이 경찰에게 핀잔을 주는 장면을 넣어, 경찰 관계자, 즉 사복 형사라는 것도 알려주죠. 

이 짧고 코믹한 씬 하나로 관객들은 구구절절한 설명없이 영화의 핵심 정보를 재미있고 생생하게 얻어갑니다. 2010년 언제쯤인 시대, 주인공 마동석은 엄청난 실력의 형사다. 이 내용을 말로 설명했다면? 정말 딱딱하고 지루했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며 작은 사건이 터집니다. 이수파 똘마니 하나가 독사파 조직원을 칼로 찌릅니다. 이로인해 폭력조직간 전쟁이 일어날 일촉즉발의 상황. 이를 정리하기 위해 마동석이 강력반 형사들을 데리고 출동합니다. 


범죄도시 금천구 강력반 형사


영화를 보시면, 화면 정면을 향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양옆으로 늘어서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처음 금천구 강력반 형사들이 이렇게 양옆으로 늘어서 나타났구요, 그에 대치하는 독사파 조폭들도 정면을 향해 옆으로 늘어선 모습을 보입니다. 이 구도를 이용해 영화는 누가 누구와 한편이고, 영화내 서로 편을 딱 갈라선 조직들이 활동함을 암시합니다. 


범죄도시 흑룡파 3인방

(흑룡파 3인방도 이런 구도를 보여줍니다. 이 구도는 조금 유치하지만, 등장인물들을 편가르기 좋아 종종 사용되는 구도죠.) 


범죄도시 초반부


이 장면에서 마동석의 명대사가 하나 나오죠? "와~ 깡패다." 영화 초반의 핵심을 이런 재치있는 대사 하나로 관통했습니다. 이 대사는 복합적인 역할을 하는데요, 우선 영화의 주인공, 금천서 형사들과 그에 대치하는 조폭들을 명확히 가르고 있습니다. 화면에 정면으로 잡히는 마동석 무리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폭과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형사들이죠. 


범죄도시 독사파


그에 대치하는 이들, 독사파 패거리는 조직폭력배, 깡패들이구요. 두 그룹의 숫자를 볼까요? 금천구 강력반은 일당백 마동석이 있지만 고작 4명입니다. 그에비해 독사파는 무기를 갖춘 깡패들이 9명이네요. 

이런 압도적인 불리함속에서도 마동석은 여유롭게 대사를 치며 조폭들을 무서워하지 않은 경찰임을 알려줍니다. 영화에서 경찰과 조폭과의 관계를 이 짧은 한마디가 한방에 정리해 버리네요. 동시에, 영화는 이 두 그룹, 경찰과 조폭이 서로 대척을 이루며 스토리를 이끌어 갈 것을 알려줍니다. 






범죄도시 도박장


여기까지 별다른 설명 없이도 많은 것을 알려주었죠? 영화의 시대상, 깡패가 설치는 도시, 조폭을 무서워하지 않는 강력반. 여기에 마동석과 조폭들의 비즈니스적 공생 관계를 정리해주는 짧은 대사가 나옵니다. 


마동석이 이수파의 두목 장이수를 만나기 위해 마작장을 찾은 씬인데요, 자신을 막아서는 조폭을 단숨에 제압하고는 도박하는 사람들을 해치며 이렇게 말하죠. "도박들 하세요." 경찰이 도박장에서 도박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냥 지나칩니다.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아니고 태연하게 계속 도박이나 하라고 이야기하죠. 

분위기에 맞지않는 대사로 코믹하게 들리지만, 이 짧은 대사가 마동석이 조폭 두목 장이수를 만나기 전에, 이 둘의 관계를 한방에 정리해 주죠. 비즈니스적인 공생관계로 말이죠. 


(그러면서 마동석의 뒤를 따르는 형사가 미성년자로 보이는 등장인물 입의 담배를 빼앗습니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조폭을 컨트롤하고 있지만, 경찰의 본분을 잊지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죠.) 


범죄도시 장이수와 독사


장이수와 독사를 현박반 설득반으로 데려온 마동석을 두 사람을 화해 시킵니다. 화해하는 도중에도 서로 으르렁 거리는 장이수와 독사. 이 코믹한 장면이 관객들에게 앞서 던진 실마리들을 정리해 줍니다. 가리봉동에는 중국계 조폭이 둘 있고, 이 둘을 금천구 강력반 형사가 컨트롤하고 있다. 


범죄도시 춘식이파


여기에 하나 조폭이 하나 더 나옵니다. 많이도 나오네요. 벌써 세번째죠? 황춘식이 두목으로 있는 춘식이파네요. 두목 춘식이는 룸싸롱에서 마동석을 접대하면서 마동석이 좋아하는 술을 꺼냅니다. 나름 친분을 쌓은 관계라는 것을 암시하는데요, 춘식이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니 중국계가 아닌 것 같죠? 이런 춘식이파의 정체성을 암시하는 대사가 있는데요. 



춘식이파 룸싸롱에서 행패를 부리는 흑룡파 3인방을 보고, 룸싸롱 지배인이 중국인을 비하하는 대사를 치죠. 이 대사는 여러모로 영화의 한 시점을 끊어내는 경계선입니다. 흑룡파를 향해 위 대사를 날리면서 춘식이파는 중국계가 아닌 한국계 조폭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춘식이파를 마지막으로 영화내 등장하는 폭력조직 3개의 설명이 끝났네요. 영화의 초반부도 함께 끝납니다. 바로 다음 장면, 흑룡파 3인방이 룸싸롱 지배인에게 가하는 린치부터 장첸의 비상, 영화의 중반부가 시작합니다. 이 사건으로 흑룡파는 가리봉동 조폭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죠. 

(그전에 독사를 제거했지만, 아직 독사 제거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장첸과 장이수가 처음 대면했을 때도, 장이수는 장첸에게 독사 제거가 아닌 룸싸롱 린치 사건을 언급하죠.) 




3개의 폭력조직과 금천서 강력반, 영화를 이루는 4개 그룹과 그룹간의 관계를 짧은 대사 몇 마디로 정리해낸 범죄도시의 초반부는 다시봐도 감탄이 나올만큼 영리합니다. 잘못하면 관객에게 역사 교과서 읽어주듯 브리핑해 지루해질 수 있는 초반부를 쉽고 재밌게 구성했죠. 영화의 배경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중반부로 넘어가는 연출도 자연스러웠구요. 범죄도시의 압도적인 몰입감은 이런 영리한 대본 구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범죄도시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인만큼 할 이야기도 풍성한 영화네요. 관객이 캐릭터에 감정이입하도록 하는 장치,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등장인물간 파워순위, 마동석과 장첸의 마지막 대결에서 보여준 액션의 서사까지. 


앞으로 3개의 포스팅에서 범죄도시를 철저 분석해볼 생각입니다. 그럼, 다음 포스팅을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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